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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묘해진 금융사기 "깜빡하면 속는다"

여행가/허기성 2006. 12. 2. 22:24
[중앙일보 최준호] 경기도 부천의 조모(여.46)씨는 최근 한 금융사기단에 속아 200만원 가까운 돈을 한순간에 날렸다. 사기단은 기업은행 전산실 직원을 가장해 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드대금 188만원이 연체됐다"는 말에 조씨는 "기업은행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사기단은 "기업은행의 고객 정보가 외부에 유출됐다. 우리가 조치할 수 있도록 통장 계좌번호를 가르쳐 달라. 아마 조금 후 금융감독원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도 전화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고민하던 조씨에게 잠시 후 금감원이라며 전화가 왔다.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 신용카드 마그네틱선의 보안 수준을 강화시켜 주겠다. 지금 즉시 ○○은행 CD기로 가라"는 내용이었다.

당황한 조씨는 집 부근 CD기로 달려가 금감원 직원이라는 사람이 시킨 대로 카드를 집어넣고 번호를 눌렀다. 조씨는 마지막으로 '확인'버튼을 누르고서야 어딘가로 돈을 송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뒤늦게 송금한 은행에 전화를 해 확인해 보니 조씨가 누른 번호는 한 중국인이 개설한 통장 계좌번호였다.

금융사기단의 사기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과 경찰에서 '○○ 유형의 사기 수법'이 유행하고 있다고 주의보를 내리면, 더 교묘한 수법의 사기단이 등장해 범행을 벌이고 있다. 당국이 뛰면 사기단은 날아가는 꼴이 되고 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국민연금 환급' '국세청 세금 환급'을 해주겠다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유인하던 몇 달 전 수법은 '고전(古典)'이 됐다. 금융감독 당국과 언론에서 이 같은 사기단을 주의하라고 대대적으로 알리자 이제는 금융감독원과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를 사칭해 조직적으로 사기를 벌이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중국 동포이며, 국제범죄조직과도 연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30일 "사기단이 상대방을 믿게 하기 위해 자동응답전화(ARS)까지 마련한 뒤 금감원과 경찰청까지 빙자해 여러 통의 전화를 해 고객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돈을 빼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올 7월부터, 우리.하나은행도 11월 들어 이 같은 유형의 전화사기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에도 지난달 말부터 사기 전화 피해자의 신고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이재순 수사실장은 "주로 국제범죄사기단과 연루된 중국 동포들이 중심이 돼 비슷한 유형의 사기를 벌이고 있다"며 "'대포통장'(타인 명의의 불법통장)과 인터넷전화를 이용해 범행을 한 뒤 바로 돈을 인출해 달아나기 때문에 돈을 되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6월 이런 형태의 사기가 생겨나기 시작해 최근까지 신고만 수백 건에 달하고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액만도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올 7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검거한 전화사기단의 경우 피해자 46명, 피해액은 2억1400만원에 달했다. 사이버수사대는 당시 사기단 5명 중 2명을 검거했으나 나머지 3명은 중국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