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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나라 꼴이…국민 사기가 이런 적 없었다”

여행가/허기성 2006. 12. 2. 22:31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일 경북 포항시 포스코 영빈관에서 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와 사회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가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것은 3년 4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포항=김창원 기자
‘한국 철강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주역 중 한 사람인 그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심각한 위기상황인 듯했다. 특히 활력과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는 경제를 안타까워했다.

1일 경북 포항시에 있는 포스코 영빈관 ‘백록대’에서 어렵게 성사된 본보와의 인터뷰 중 박 명예회장은 여러 차례 “나라 꼴이 이게 뭐냐”며 걱정했다.

“국민의 사기가 이렇게 떨어진 적은 없었어.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비전이 간절해.”

박 명예회장은 악수를 건네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 국가들은 다 좋은데 한국 경제만 활력을 잃어 가고 있어”라며 말문을 열었다.

“큰일이야. 주변을 둘러보면 중국 일본 등 주변국 경제는 다 좋은데 우리만 심각해. 일본에 가 보니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는 게 느껴져. 미국도 호전되고 있고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어. 둘러보는 데마다 다 좋은데 왜 우리 경제만 이리 나쁜가. 도대체 누가 잘못하는 거야. 국민이 잘못하나. 기업인들은 열심히 하고 있잖아.”

○ “기업인들 의욕 저하 심각한 상태”

그는 국민의 사기 저하를 특히 우려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거야. 뭔가를 해내야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모든 게 나빠질 수밖에 없지. 기업이 활발히 투자하도록 독려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경제란 것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데, 이제 국민소득 1만 달러 갓 넘었는데 드러누워 있을 때요?”

기업들의 사기 저하에 대한 걱정도 컸다.

“기업 하고 있는 사람들 사기 저하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기업이 왕성한 투자를 하고 잘나가야 직원들도 일할 맛이 나는 게지. 직원들이 출근해서 어물어물 적당히 넘어가면 국가가 발전할 수 있겠소? 발전하는 희망을 봐야 선배로서 후배를 가르칠 생각도 나는 것이고….”

그는 “경제 이야기만 하면 더워진다”며 양복저고리를 벗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정부 내에서부터 경제를 염려하는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 정권에서 나오는 소리는 온갖 정치 이야기만 난무하고 말이지. ‘대통령 임기’가 어떻다는 이야기나 나오고….”

이 대목에서 최근 논란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거론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극도로 말을 아끼던 박 명예회장도 이 대목에서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듯했다.

“난 끔찍하더라고. 지휘자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국민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야. 지휘자가 지휘하다가 못 하겠다고 지휘봉을 놓으면 그 조직은 어떻게 되는 거요? 내가 포항제철 회장 할 때 ‘힘들다고 그만둬야겠다’ 했으면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겠소? 국민이 ‘사업을 해야겠구나’라는 믿음을 줘야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

○ “미국-일본-중국과의 관계 원만치 못해”

박 명예회장은 오랫동안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지일파(知日派)로 꼽힌다. 2003년부터는 중국 발전연구기금회 국제고문으로 위촉돼 중국 사정에도 정통하다. 그런 그가 느끼는 한국의 대외관계는 어떨까.

“한국은 국제관계가 대단히 중요한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정치, 경제적 우방과의 관계에 신경 써야 하는데 말이지. 10여 년 전만 해도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어. 우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나라가 이 세 나라인데 지금은 관계가 원만치 못한 것 같아. 국민이 불안해 하는 요인이기도 하지.”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갈 차기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물었다.

“국가를 책임질 사람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희망을 줄 수 있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곤란해. 회사의 책임자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을 때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무슨 일을 시켜도 불만이 없는 법이지.”

지도자의 비전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는 잠시 과거 회상에 젖는 듯했다.

“1960년대 말 포항제철을 지을 땐 말이야, 임직원들이 ‘우리도 제철소 하나는 가져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쳤어. 현장에서 직원들의 열정이 느껴질 정도였지.”

이어 광양제철소 건설 때의 에피소드도 이야기했다.

“우리가 갯벌을 메워 세계 최대 규모의 광양제철소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어. 처음에 광양에 가 보니 물바다였어. 직원들은 ‘어떻게 저기에 공장을 짓느냐’고 했지만 ‘가만 있어 봐. 물 빠졌을 때를 보자’고 했지. 물이 빠지니까 제철소가 들어설 만한 터가 나오기에 ‘저걸 다 매립하라’고 지시했지.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까 모두가 밤낮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일할 수 있었던 거지. 비단 한 공장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닌 것 같아.”

○ “포스텍 개교 20년… 현장 중심 교육 성과”

그는 성공한 철강인으로 유명하지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는 점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포철 회장 재직 시절 포항공대(포스텍)를 비롯해 초중고교 15개를 설립하기도 했다. 3일 개교 20주년을 맞는 포스텍은 인터뷰 당일인 1일 20주년 기념식을 치렀고 박 명예회장은 축사를 했다.

“당시엔 서울대 공대 졸업생 가운데 용광로를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 당시만 해도 한국 교육은 현장보다는 이론에 치우쳐 있었지.”

포스텍 설립 이유를 물어보자 이론 교육에 치우쳐 있던 1980년대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절감하고 실제로 연구하고 실험하는 학교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였다고 답변했다.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실제로 현장을 경험하는 것처럼 중요한 게 없지. 이런 과정을 통해 실력이 축적되는 것이고. 포스텍 개교 20년 동안 졸업생이 1만 명 넘게 나왔지만 한 명도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이 없거든. 그만큼 실질적인 교육을 하기 때문에 제자리들을 찾아가는 것 아니겠소.”

박 명예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본보 취재팀에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국민이 힘차게 일할 수 있도록 사기 좀 높여 주시오. 이게 없으면 한국도 끝장입니다.”

▼“건강? 괜찮아… 날씨 풀리면 해외사업장 가봐야죠”▼

“협력 회사 가운데 돈 제일 많이 버는 곳이 어디야. 그 회사보고 포스텍에 컴퓨터 2대씩 기증하라고 그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만나러 포스코 영빈관에 들어가는 순간 영접실 쪽에서 박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본보 취재팀이 영접실에 들어섰지만 포스코 임직원들을 향한 날카로운 질책은 계속됐다.

“돈 많이 벌면서 학생들한테 그런 것도 지원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학교 전화기도 최신형으로 다 바꿔.”

짙은 눈썹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팔순의 나이(만 79세)를 무색하게 할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인사를 건네자 짙은 눈썹 꼬리가 내려가면서 옅은 웃음으로 취재팀을 맞았다.

건강이 궁금했다. 2001년 7월 허파를 압박하던 3.2kg의 큰 물혹을 떼 내는 대수술을 한 뒤 급격히 체력이 약해진 박 명예회장은 올해 8월 미국에서 통증 제거 시술을 다시 받아야 했다.

“(건강이) 좋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어. 포스코 일하던 시절이랑 같아.”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2003년 7월 마지막 공식행사인 포스코역사관 준공식 때의 모습과 비교하면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철의 사나이’도 세월을 비켜 가진 못하는 듯했다.

10월 말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요즘 부산과 서울 집을 오가며 요양하고 있다. 천성이 부지런한 터라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고 했다. 날씨가 풀리면 베트남과 인도 사업장도 둘러볼 예정이다.

“답답해서 집에 오래 못 있어. 죽을 때까지 가만있지는 못할 성격인 것 같아.”

인터뷰 말미에 동아일보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동아일보는 1978년 ‘올해의 인물’로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회장을 선정했다.

“(창밖을 가리키며) 당시 저기 허름한 A동에 살았는데 아침에 동아일보를 펼치니 1면에 내 얼굴이 떡하니 나와 있는 거야. 20여 년간 살았던 A동은 아침이면 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도 했지. 허허허.”

한국 경제에 대한 걱정으로 인터뷰 내내 표정을 풀지 못했던 박 명예회장은 이때만은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