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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폭락은 시작됐나

여행가/허기성 2011. 12. 13. 06:35

대규모 개발 사업인 서울 강남구 개포지구 재건축 안이 전면 보류되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부동산 시장이 더욱 얼어붙고 있다. 재건축 과속을 방지하고 뉴타운과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했던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이 된 후, 드디어 강남 재건축을 필두로 '칼을 빼들었다'는 시각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 2008년 일부 물량을 전세 시프트로 공급한 서울 서초구 반포 자이 아파트.
서울시는 최근 개포지구 재건축 안을 전부 보류한 것과 관련해 "공공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시 검토하라 한 것이지 재건축·재개발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박 시장 취임 이후 부동산 경기가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이란 시장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박원순 취임 후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박 시장 취임 이후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많은 사람이 우려한 대로 침체가 가속화할 것인가. 박 시장의 부동산 정책은 내년 대선 이후 부동산 시장의 향배를 점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박 시장의 공약 중 한강르네상스 사업 재검토는 당연한 정책이다. 사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은 전임 시장의 전형적인 전시행정이었다. 한강변의 낙후된 지역을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지만 기부채납을 둘러싼 주민과의 갈등, 당인리 발전소 이전 문제, 노후도를 충족하지 못한 지역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아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 설령 실현한다 해도 20년 이상 걸리는 막연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 지역 지분값이 폭등하면서 서울 집값을 상당히 왜곡시켰다.


↑ 11월 3일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에 반대하는 은평동, 상계동 등 뉴타운 지역 주민 200여 명이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왼쪽). 박원순 서울시장.

한강르네상스 사업이 사실상 백지화되면 개발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리고 양평동, 당산동, 합정동, 망원동, 자양동에 투자한 사람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역세권의 월세 수요를 보고 다세대 등을 구입한 투자자는 예외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개발 대상지인 여의도동과 동부이촌동, 잠실, 반포 등은 개발 계획이 백지화되더라도 재건축사업은 순리대로 이뤄질 수 있다. 오히려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영향을 받지 않아 추진이 더 빨라질 여지도 있다. 초고층으로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기부채납 등에 의한 마찰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초고층을 강력히 원하는 압구정동 지역은 재건축 추진이 답보 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

박 시장은 "재건축 과속을 방지하고 뉴타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은 투기판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도시 미관을 개선하고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는 도시계획 사업이다. 계획과 절차에 따라 추진해야 하며 주민의 동의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일부 투기꾼의 농간, 대중의 무지로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은 돈을 왕창 벌 수 있는 사업처럼 호도됐던 것이 사실이다.

재건축과 뉴타운 사업이 추진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동산 시장 침체 탓도 있지만 땅값에 거품이 잔뜩 끼었기 때문이다. 시장 침체로 분양가는 오르지 않았는데 조합원의 출자 자본만 높아져 수익성이 많이 떨어졌다. 다시 말해 추가로 내야 할 부담금이 많아 반대하는 주민이 늘어난 것이다. '재건축과 뉴타운을 하네, 마네'로 싸울 게 아니라 반대하는 곳은 하지 않는 것으로 빨리 결론 내고, 찬성하는 지역은 어떻게든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는 것이 현명하다. 낡은 주택을 정비해 주택 공급을 늘리는 사업은 도시계획상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시장 정상 회복 기대
재건축과 뉴타운의 옥석 고르기가 시작되면 대지 지분값의 전체적인 하락은 불가피하다. 정비구역 해제가 확실한 지역은 투매 현상으로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사업성이 좋아 추진이 가능하거나 추진 속도가 빠른 지역은 오히려 인기가 많아져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 서울 도심에서 새 아파트를 공급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땅값도 정비 사업이 가능한 지역은 오르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거품이 꺼져 왜곡된 시장도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이 분명하다.

박 시장의 공약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항은 공공임대주택 8만 가구 공급과 임대주택 및 장기전세주택 공급이다. 필자 역시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 생각한다. 정부란 모름지기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고 시민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내 집을 장만하려는 사람에게는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무주택자에게는 임대주택을 마련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임대주택을 이렇게 많이 지으려면 재원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세금을 많이 걷어 임대주택을 지으면 집 가진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진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좋으나 , 그렇다고 법을 잘 지키며 열심히 사는 사람의 돈을 빼앗는 것은 옳지 못하다.

박 시장이 임대주택을 많이 지으려면 개발이익환수제를 잘 이용해야 한다. 개발하는 사람이 이익을 많이 가져가면 그 이익의 일부를 환수해 임대주택 등을 짓는 데 주는 것이다.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짓는 것에 대해 일종의 개발 인센티브를 주는 셈이다. 예를 들어 용적률이 250%밖에 안 되는 지역의 용적률을 350%까지 높여주고 그로 얻은 이익의 절반을 임대주택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개발하는 처지에서는 이익 일부를 임대주택을 짓는 데 빼앗기지만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나 수입이 더 많아지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박 시장 체제에서는 역세권시프트 재건축사업이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역세권 반경 500m 이내 노후불량지역의 용적률을 300~500%까지 늘려주고 그 대신 개발 이익 일부를 임대주택을 위해 환수하는 사업이다. 이미 서울시가 역세권시프트 시범지역을 선정하는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에 이 지역 선점을 둘러싼 물밑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한편 아파트 시장은 박 시장과 상관없이 가격 하락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하향세인 데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경제지표와 비교했을 때 아직도 상당히 많이 비싸고 시장도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아파트값이 안정되는 전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도 주택 시장의 하향안정세는 당연하다. 하향안정세는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산 사람에게는 고통을 주겠지만, 내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을 비롯해 경제 전반에는 즐거움을 준다. 물가 안정에도 영향을 줘 장기적으로는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된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다면 박 시장 체제하의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지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말고, 시세차익보다 현금흐름이 확보되는 부동산이 무엇인지, 초기 투자비용을 줄여 내 집 마련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렇게 박 시장 취임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을 때가 내 집 마련의 좋은 시기일지도 모른다.